[Republic of South Africa] Braai
About 'Shaka'
Professional Barbecuer "Shaka"
Barbecue Commentator
Barbecue Promoter & Performer / 바비큐 프로모터 & 퍼포머
Korea Barbecue University / 한국바비큐대학
Korea Barbecue Research & Institute / 대한바비큐연구소
Shaka's Outdoor & Barbecue Studio / 샤카스 아웃도어 바비큐 스튜디오
Channel Outdoor / 채널 아웃도어
Outdoor Entertainment / 아웃도어 엔터테인먼트
Production Outdoor / 프로덕션 아웃도어
Spirit Korea Magazine / 스피릿 코리아 매거진
World Barbecue Forum / 월드 바비큐 포럼
Korea Barbecue Society / 코리아 바비큐 소사이어티
Barbecue Commentator / 바비큐 해설가
Koea Outdoor & Barbecue Association / 사단법인 대한아웃도어바비큐협회 회장
"Shaka"는
국내 최초의
Real Barbecue 커뮤니티를 개설하고
바비큐 문화와 아웃도어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어왔다.
현재는 BArbecue Promoter 겸 Performer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3년 tvN에서 방송된
창직서바이벌 프로그램인
『크리에이티브 코라아』에 출연해
『프로바비큐어』라는 창직명으로
최종 Top5까지 진출하면서
세계 최초로
『프로바비큐어』라는 직업을 창직하고
바비큐의 스포츠화를 통해
새로운 문화와 산업을 만들어 가고 있다.
또한,
Y대학교에서
국내 최초로
Real Barbecue를 강의를 하는
교수를 역임했으며,
미국에서 1959년부터 이미 자리 잡은
Barbecue Competition 문화를
세계 최초로
대한민국에서
Sports Barbecue로 재탄생 시키면서
국내
수 많은
경기대회를 주최, 주관하고 있다.
Sports Barbecue 문화의 중심에 설
Professional Barbecuer 양성을 위해
『Korea Barbecue University』를 설립하였으며
선수 양성 과정과
다양한 Barbecue Class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성으로
아직도 호모에렉투스를 기다리고 있는
원시주의자이며,
스포츠 바비큐 문화를 통해
잃어버린 인간성과
무너지는 공동운명체 복원을 꿈 꾸는
놀이주의자
『호모날리리언스(Homo-Nallarians)』다.
현재는
『사단법인 대한아웃도어바비큐협회』 회장을 맡고 있고,
2018년
서울에서 창립총회를 마친
『국제아웃도어바비큐스포츠연맹(IOBSF)』 사무총장으로
스포츠 바비큐의 세계화에도 단단한 밑거름을 놓고 있다.
아울러
스포츠 바비큐 문화를 통해
4차산업 혁명 이후 도래 할 놀이혁명인
5차 산업혁명을 꿈꾸는 사회혁명가이기도 하다.
작가로서도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리얼바비큐 교과서인 『Shaka's Barbecue Primary』 (2015년, 교문사)와
국내 식육게릴라 4인이 공동으로 참여한
『고기실무전』(2019년, 팜커뮤니케이션)이 있다.
브라이(아프리칸스어: braai)는 남아프리카 지역의 바비큐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프리카너 전통이지만, 나미비아, 레소토, 보츠와나, 잠비아, 짐바브웨 등 주변국에도 퍼졌다. 파카 이가마(줄루어: faka igama), 찌사 냐마(코사어: tshisa nyama), 베샤 나마(북소토어: bêša nama), 메떼오 나마(소토어: meteo nama) 등으로도 부른다. 고기 외에도 부레보르스 등 소시지와 옥수수, 버섯, 감자 등을 흔히 굽는다.
넬슨만델라 집권이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매년 9월 24일을 "브라이의 날(Nasionale Braaidag)"로 기념한다.
줄루 추장은 세력을 넓혀가면서 남아프리카를 통합하는 기초를 다진다. 용감한 추장에서 폭군으로 인생을 마무리 하지만 지금도 그의 명성은 브라이데이 같은 메모리얼데이를 통해 역사속으로 전해진다.
9월 24일을 Braaiday라고도 하지만 Zulu족의 추장인 Shaka(1781년? ~ 1828년 9월 22일)의 태어난 날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이 날을 기념일로 삼는다. Shaka's Day
Shaks가 6세 일 때 어머니는 남편에게 쫓겨나면서 어머니를 따라 어머니의 부족이었던 랑게니족에 들어갔는데, 그 부족에서 쫓겨났고 1802년에 음테트와족의 방계인 들레트셰니족에서 보내다가 자라서 줄루족으로 돌아가 아버지를 따르던 자들을 모두 죽였다.
또한 어머니의 부족을 공격해 어머니를 놀렸던 사람들을 찾아내 죽였으며, 10여년간 전쟁을 벌여 인근 지역을 정복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그는 줄루족의 왕이 되었다.
샤카는 줄루족의 창인 아세가이 투창이 접근전에 불리하자, 찌르기 좋은 짧은 창인 이클와를 고안해냈고, 방패의 크기를 키우거나 포위망을 위한 대형을 사용하는 등 군사적인 방면에서도 크게 활약했다.
샤카줄루라는 드라마에는 신분이 높은 대장장이에게 이클와와 새로운 방패의 모양을 설명하고 대가를 치루는 장면이 나오는데, 전설의 무기가 만들어지는 듯한 연출이 사용된다.
그만큼 이 무기는 당시 아프리카의 전투에서 샤카의 부대가 승리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치세에는 35살 이하의 남자 2만명은 미혼으로 영구적으로 군대에 복무했다. 이로 인해 아이를 낳는 시기가 늦어져 줄루족의 인구가 감소하게 되었는데, 이는 인구 과잉으로 가축의 목초지가 부족해 줄루왕국의 인구를 통제하기 위해 내린 조치였다.
영국 상인이 줄루 왕국을 방문하자 그들에게 무역항을 짓는 것을 허가했을 정도로 서양인에게 비교적 우호적인 정책을 펼쳤고, 이는 다른 아프리카 소왕국 지도자들과 달리 널리 알려진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샤카는 재위에 오른 후 10여년 동안 주변 부족들을 정복하며 줄루족에 동화해나가며 일개 소왕국의 족장에서 거대한 제국의 국왕이 되었다.
그러나 말년에는 어머니가 죽은 뒤, 정신병이 심해져 폭군이 되었다.
샤카의 포악함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폭정을 일삼다가 결국 1828년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 이복동생 딩가네에게 살해당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영국이나 유럽에서는 악랄한 지배자로 왜곡했고 말년에는 실제로 폭군이기는 했으나 잔악한 지배자한테 지배 받으니 아프리카는 미개하다는 식의 교육을 시켰다가 아프리카 나라들이 독립한 뒤로는 줄루족의 후손들에게 줄루족의 강력한 지배자로 추앙 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유럽도 샤카를 깔 입장이 못되었다. 이쪽도 악랄하기 짝이 없던 건 마찬가지였다.
현대적인 전시국제법이 탄생하기 이전에는 포로를 남겨두지 않고 모두 죽이거나, 적 진영의 민간인에게 악랄한 학살행위를 자행하는 일들은 빈번했고 때로는 그것이 오히려 용감한 지도자의 미덕으로 여겨지기까지도 했다. 샤카가 말년에 유독 폭군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은 그의 정신질환이 심해지면서 자기 가족이나 후궁의 목숨까지도 파리 목숨처럼 가벼이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부 지역에 거주하는 코사족이나 소토족 등에게는 그리 좋지 못한 평을 받고 있는데 이들 종족은 줄루가 한창 강성해졌을때 샌드위치 신세였기 때문이었다. 줄루족과 보어인, 대영제국과의 대립에서 코사족이나 소토족을 비롯한 중부지역의 흑인 종족들이 샌드위치에 끼이듯 밀렸고 그 과정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