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날라리언스가 돼라! 프로바비큐어 ‘차영기’
2021년 1월 18일 / 글쓴이 veteranclub / 댓글 달기
행복하고 싶다면
호모날라리언스가 됩시다
일찌감치 잘나가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로 바비큐어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차영기 회장.
취미였던 바비큐를 업으로 삼아
대한민국에 바비큐 문화를 조성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본격적인 산업화까지 이뤄내는 중이다.
미래에는 더 많이 즐겁고 행복하게
노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호모날라리언스’론을 주장하는
차 회장을 만났다.
아웃도어 인구가 늘면서 그릴에 숯을 담고
고기를 구워 먹으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바비큐를 즐기는 이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바비큐와 관련된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프로바비큐어라 함은 스포츠바비큐 경기의
주체가 되는 자로서 모든 과정의 이론과
실기 자격을 갖춘 자로, 자격과정을 이수하고
대한아웃도어바비큐협회 정회원으로
등록된 선수를 이릅니다.
프로바비큐어는 각종 바비큐 경기대회
출전은 물론이고 바비큐 마스터나
핏마스터, 바비큐 교수나 강사로
활동할 수 있으며 자기 브랜드의
상표를 가지고 영업 행위 또한
가능한 미래 유망직업입니다.”
우리나라에 프로바비큐어라고 하는
새로운 직업을 탄생시킨 이는 바로
대한아웃도어바비큐협회 차영기 회장.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비큐는
직화구이(Direct Method) 형태로
높은 불의 온도에서 덩어리가 작거나
얇은 형태의 재료를 짧은 시간에 굽는 방식.
그러나 프로바비큐어가 수행하는 바비큐는
스포츠바비큐라고 부르는데 간접구이
(Indirect Method) 방법으로 고기를
통으로 굽거나 큰 부위별로 정형한 다음
좋은 열과 연기로 낮은 온도에서
장시간 굽는 방식을 말한다.
“프로바비큐는 아주 원시적이면서도
익어가는 동안 재료의 질감과 상태의
변화를 최소화하는 과정이며,
Low & Slow로 요리하는 방식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바비큐 문화는
가장 초보적이고 단편적으로 즐기고 있는
단순한 형태로 불을 이용해 요리를 한다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문화적 특징이 없어요.
저는 원시적 형태의 스포츠바비큐를 통해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고
무너지는 공동운명체 복원을 꿈꿉니다.”
차 회장은 동호회 활동 등을 통해
바비큐 동호인을 모으기 시작해
2009년 말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사단법인 대한아웃도어바비큐협회’
설립인가를 받고 본격적인
바비큐 문화 확산에 매진 중이다.
바비큐의 매력에 빠져
직장을 관두고 독학을 시작하다
차 회장이 바비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30대였던 1990년대 후반의 일이었다.
경기도 송탄에서 삼성생명 마케팅매니저로
십수 년째 근무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가 우연히 이웃 미군 가족의 모습을 보고
바비큐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그때만 해도 토요일에 출근할 때였어요.
저는 출근하는데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작고 검은 동그란 그릴에 불을 붙이고
바비큐를 즐겼어요. 퇴근할 때까지
즐거운 시간을 갖는 그들을 보면서
‘남의 나라에 와서도 저들은 저리
행복하고 즐거운데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장 가서 작은 그릴을 하나 장만했지요.”
그 후 차 회장은 매주 주말이면
근처 공원에 나가 고기를 구웠는데
그 양이 많아서 친구와 동료를
초대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즐기는 재미를 작은 그릴을 통해
느끼면서 점점 바비큐에 빠져들던 차에
마침 직장에서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렸고 주저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저에게 직장은 전우애가 없는
전투를 치루는 전쟁터 같은 곳이었습니다.
과장을 넘어 가까스로 부장을 달 때가 되면
하나둘 직장을 떠나는 선배들을 보면서
하루라도 일찍 새로운 일에 도전하자
결심했죠. 좋아하는 일을 찾아
평생의 직업으로 즐기며 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게 바비큐입니다.”
당시만 해도 바비큐를 알려주는
교육기관이나 자료가 드물었다.
인터넷을 통해 바비큐 자료를 찾
커뮤니티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사람들과 정보를 교류하는 등
독학의 시간이 이어졌다.
바비큐는 요리라는 생각에
한국호텔관광전문학교에서
요리도 배우며 깊이를 더해갔다.
꿈을 말하고 말한 것을
반드시 해내려 했던 시간들
그러나 어린아이들을 둔 가장으로서
돈 버는 일을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그는 돈이 떨어지면 잠깐 취직해서
어느 정도 돈을 벌면 다시 그만두고
바비큐에 전념하다가 다시 돈이
필요하면 취직하기를 반복했다.
“그 당시 잠깐씩 근무할 때마다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 얻은 영감도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주로 방송국과 언론사에서 일했는데
그 덕분에 언론 시스템을 알게 되어
지금은 그것을 활용할 자신감도 갖게 됐죠.”
차 회장은 어려운 길을 가야 할 때면
일단 주위에 자신의 계획을 떠벌리는(?)
습관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예를 들어 바비큐 책을 내고 교수를 하며
선수를 양성하고 젊은이들이 먹고 노는
직업을 만들고 싶다는 것들을 주위에 말했다.
처음 그가 그런 계획을 말할 때면
허풍이라고 여겼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이 말한 모든 것을 실현했다.
“제가 회사를 그만둔 후
절대 하지 않은 말은
힘들다와 어렵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하는 즉시 제가 무너질 것 같은
불안함 때문에 생긴 금기어죠.
그런 말 대신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방법을 만들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차 회장은 최근 63빌딩을 사겠다는
포부를 당당하게 외치고 있다.
벌써 주위 친구들에게 상상 속
분양도 마쳤다며 웃었다.
유쾌한 농담을 통해 새로운 목표를
끊임없이 새우고 도전하는
그의 가장 큰 자산은 당당하게
포기하지 않는 기개일 것이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나의 행복과 자유를 추구하는 것
차 회장은 사단법인을 설립한 후
영동, 남원, 문경 등에서 크고 작은 대회를
개최하면서 바비큐 경기를 대중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끝에 2013년 상당한 규모의
‘코리아 오픈 한돈컵 바비큐 챔피언십’을
충남 천안에서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창직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tvN의 <크리에이티브 코리아>에
출연해 ‘프로바비큐어’라는 직업을
공개적으로 창직했다.
동시에 한화이글스 대전구장에
‘Shaka’s Barbecue’라는 브랜드로 입점하여
소비자들의 반응을 분석, 본격적으로
스포츠바비큐와 대중시장을 연결하고자 했다.
그 후 정규대학의 정규과목으로
리얼바비큐를 가르치는 겸임교수가
되기까지 우리나라 바비큐 문화
조성에 앞장서왔다.
“바비큐 천국이라는 미국에도
정규대학 강의는 없고 유명한 핏마스터
또는 바비큐마스터가 개인적으로 실시하는
커뮤니티나 클래스 수준의 강의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규대학에서 리얼바비큐를 가르치는
교수는 아마도 제가 세계 최초일 겁니다.”
그는 대학교수를 역임하면서 동시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도 마련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협회 차원의
자격과정을 등록하고 체계적인 교육일정을
수립, 본격적인 바비큐 전문가 및 선수와
심판 양성의 기틀을 잡아나간 것이다.
또한 국내 최초로 바비큐 이론서인
<Shaka’s Barbecue Primary>를 출간하고,
이후 포천과 이천, 여주 대회를 연속으로
개최하면서 스포츠바비큐 붐을 조성해나갔다.
차 회장의 노력은 더 많은 일반인과
선수들의 관심을 받고 미래에 대한
직업적 희망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바비큐 하면 정원을 먼저 떠올리는데
장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비큐를 하는 마음가짐입니다.
개인과 타인의 행복을 우선시하며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나의 행복과
자유를 추구함에 있어 나 외의
어떠한 것에도 피해를 주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대한아웃도어바비큐협회에 관심 있는
쿠바리언들의 정신적 지침이기도 합니다.
Humanist, Naturalist, Superego!”
차 회장은 오븐이나 냄비로도
충분히 바비큐를 즐길 수 있다며
바비큐는 먹는 즐거움보다 준비하고
만드는 즐거움이 더 큰 문화이자
음식이라고 강조했다.
삶을 즐길 줄 아는
호모날라리언스가 필요한 시대
차 회장은 앞으로 할 일이
매우 많다고 고백했다.
지금까지가 명분과 정당성을
만들어온 과정이라면 이제부터는
현실적 자립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협회의 구조도 재정비하고
시스템도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등
스포츠바비큐의 문화적 견고함과
안정적 산업화를 추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지난해 설립한
‘국제아웃도어바비큐스포츠연맹’ 사업을
현실화하는 것도 그가 해야 할 일이다.
아시아권 위주의 바비큐 경기대회를 통해
서서히 명실상부한 국제기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준비해나갈 계획이다.
“스포츠바비큐를 하는 프로바비큐어는
중장년층에게도 아주 좋은 직업입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무 때나 시작해도
조금만 열심히 자주 하면 원하는 위치와
수준을 달성할 수 있고 경기 참여 자격을
갖게 됩니다.
또한 스포츠바비큐는 순위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경기는 축제가 되고
상금은 명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수한 선수는 새로운 영역의
셀럽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스포츠바비큐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그리고 항상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입니다.”
끝으로 차 회장은 새로운 인류로의
진화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새로운 인류가 바로
‘호모날라리언스(Homo-nallarians)’란다.
그가 창조한 용어인 호모날라리언스는
5차 산업혁명시대의 인류라는 설명이다.
“그동안 인간은 노동을 위해
사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생산성이 높아지고
고도의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에게는 시간이 풍부해졌습니다.
먹고 노는 가운데 새로운 문화가 생기고
산업이 생기며 그것이 직업이 되는 세상,
그것이 5차 산업혁명의 실체입니다.
그래서 호모날라리언스로 살아남기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이 즐겁고 행복하게
노는 방법을 연구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차영기 회장은 행복도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며 축배를 들자는 제안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호모날라리언스가 돼라! 프로바비큐어 ‘차영기’
행복하고 싶다면
호모날라리언스가 됩시다
일찌감치 잘나가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로 바비큐어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차영기 회장.
취미였던 바비큐를 업으로 삼아
대한민국에 바비큐 문화를 조성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본격적인 산업화까지 이뤄내는 중이다.
미래에는 더 많이 즐겁고 행복하게
노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호모날라리언스’론을 주장하는
차 회장을 만났다.
아웃도어 인구가 늘면서 그릴에 숯을 담고
고기를 구워 먹으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바비큐를 즐기는 이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바비큐와 관련된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프로바비큐어라 함은 스포츠바비큐 경기의
주체가 되는 자로서 모든 과정의 이론과
실기 자격을 갖춘 자로, 자격과정을 이수하고
대한아웃도어바비큐협회 정회원으로
등록된 선수를 이릅니다.
프로바비큐어는 각종 바비큐 경기대회
출전은 물론이고 바비큐 마스터나
핏마스터, 바비큐 교수나 강사로
활동할 수 있으며 자기 브랜드의
상표를 가지고 영업 행위 또한
가능한 미래 유망직업입니다.”
우리나라에 프로바비큐어라고 하는
새로운 직업을 탄생시킨 이는 바로
대한아웃도어바비큐협회 차영기 회장.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비큐는
직화구이(Direct Method) 형태로
높은 불의 온도에서 덩어리가 작거나
얇은 형태의 재료를 짧은 시간에 굽는 방식.
그러나 프로바비큐어가 수행하는 바비큐는
스포츠바비큐라고 부르는데 간접구이
(Indirect Method) 방법으로 고기를
통으로 굽거나 큰 부위별로 정형한 다음
좋은 열과 연기로 낮은 온도에서
장시간 굽는 방식을 말한다.
“프로바비큐는 아주 원시적이면서도
익어가는 동안 재료의 질감과 상태의
변화를 최소화하는 과정이며,
Low & Slow로 요리하는 방식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바비큐 문화는
가장 초보적이고 단편적으로 즐기고 있는
단순한 형태로 불을 이용해 요리를 한다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문화적 특징이 없어요.
저는 원시적 형태의 스포츠바비큐를 통해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고
무너지는 공동운명체 복원을 꿈꿉니다.”
차 회장은 동호회 활동 등을 통해
바비큐 동호인을 모으기 시작해
2009년 말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사단법인 대한아웃도어바비큐협회’
설립인가를 받고 본격적인
바비큐 문화 확산에 매진 중이다.
바비큐의 매력에 빠져
직장을 관두고 독학을 시작하다
차 회장이 바비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30대였던 1990년대 후반의 일이었다.
경기도 송탄에서 삼성생명 마케팅매니저로
십수 년째 근무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가 우연히 이웃 미군 가족의 모습을 보고
바비큐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그때만 해도 토요일에 출근할 때였어요.
저는 출근하는데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작고 검은 동그란 그릴에 불을 붙이고
바비큐를 즐겼어요. 퇴근할 때까지
즐거운 시간을 갖는 그들을 보면서
‘남의 나라에 와서도 저들은 저리
행복하고 즐거운데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장 가서 작은 그릴을 하나 장만했지요.”
그 후 차 회장은 매주 주말이면
근처 공원에 나가 고기를 구웠는데
그 양이 많아서 친구와 동료를
초대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즐기는 재미를 작은 그릴을 통해
느끼면서 점점 바비큐에 빠져들던 차에
마침 직장에서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렸고 주저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저에게 직장은 전우애가 없는
전투를 치루는 전쟁터 같은 곳이었습니다.
과장을 넘어 가까스로 부장을 달 때가 되면
하나둘 직장을 떠나는 선배들을 보면서
하루라도 일찍 새로운 일에 도전하자
결심했죠. 좋아하는 일을 찾아
평생의 직업으로 즐기며 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게 바비큐입니다.”
당시만 해도 바비큐를 알려주는
교육기관이나 자료가 드물었다.
인터넷을 통해 바비큐 자료를 찾
커뮤니티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사람들과 정보를 교류하는 등
독학의 시간이 이어졌다.
바비큐는 요리라는 생각에
한국호텔관광전문학교에서
요리도 배우며 깊이를 더해갔다.
꿈을 말하고 말한 것을
반드시 해내려 했던 시간들
그러나 어린아이들을 둔 가장으로서
돈 버는 일을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그는 돈이 떨어지면 잠깐 취직해서
어느 정도 돈을 벌면 다시 그만두고
바비큐에 전념하다가 다시 돈이
필요하면 취직하기를 반복했다.
“그 당시 잠깐씩 근무할 때마다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 얻은 영감도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주로 방송국과 언론사에서 일했는데
그 덕분에 언론 시스템을 알게 되어
지금은 그것을 활용할 자신감도 갖게 됐죠.”
차 회장은 어려운 길을 가야 할 때면
일단 주위에 자신의 계획을 떠벌리는(?)
습관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예를 들어 바비큐 책을 내고 교수를 하며
선수를 양성하고 젊은이들이 먹고 노는
직업을 만들고 싶다는 것들을 주위에 말했다.
처음 그가 그런 계획을 말할 때면
허풍이라고 여겼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이 말한 모든 것을 실현했다.
“제가 회사를 그만둔 후
절대 하지 않은 말은
힘들다와 어렵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하는 즉시 제가 무너질 것 같은
불안함 때문에 생긴 금기어죠.
그런 말 대신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방법을 만들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차 회장은 최근 63빌딩을 사겠다는
포부를 당당하게 외치고 있다.
벌써 주위 친구들에게 상상 속
분양도 마쳤다며 웃었다.
유쾌한 농담을 통해 새로운 목표를
끊임없이 새우고 도전하는
그의 가장 큰 자산은 당당하게
포기하지 않는 기개일 것이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나의 행복과 자유를 추구하는 것
차 회장은 사단법인을 설립한 후
영동, 남원, 문경 등에서 크고 작은 대회를
개최하면서 바비큐 경기를 대중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끝에 2013년 상당한 규모의
‘코리아 오픈 한돈컵 바비큐 챔피언십’을
충남 천안에서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창직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tvN의 <크리에이티브 코리아>에
출연해 ‘프로바비큐어’라는 직업을
공개적으로 창직했다.
동시에 한화이글스 대전구장에
‘Shaka’s Barbecue’라는 브랜드로 입점하여
소비자들의 반응을 분석, 본격적으로
스포츠바비큐와 대중시장을 연결하고자 했다.
그 후 정규대학의 정규과목으로
리얼바비큐를 가르치는 겸임교수가
되기까지 우리나라 바비큐 문화
조성에 앞장서왔다.
“바비큐 천국이라는 미국에도
정규대학 강의는 없고 유명한 핏마스터
또는 바비큐마스터가 개인적으로 실시하는
커뮤니티나 클래스 수준의 강의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규대학에서 리얼바비큐를 가르치는
교수는 아마도 제가 세계 최초일 겁니다.”
그는 대학교수를 역임하면서 동시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도 마련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협회 차원의
자격과정을 등록하고 체계적인 교육일정을
수립, 본격적인 바비큐 전문가 및 선수와
심판 양성의 기틀을 잡아나간 것이다.
또한 국내 최초로 바비큐 이론서인
<Shaka’s Barbecue Primary>를 출간하고,
이후 포천과 이천, 여주 대회를 연속으로
개최하면서 스포츠바비큐 붐을 조성해나갔다.
차 회장의 노력은 더 많은 일반인과
선수들의 관심을 받고 미래에 대한
직업적 희망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바비큐 하면 정원을 먼저 떠올리는데
장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비큐를 하는 마음가짐입니다.
개인과 타인의 행복을 우선시하며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나의 행복과
자유를 추구함에 있어 나 외의
어떠한 것에도 피해를 주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대한아웃도어바비큐협회에 관심 있는
쿠바리언들의 정신적 지침이기도 합니다.
Humanist, Naturalist, Superego!”
차 회장은 오븐이나 냄비로도
충분히 바비큐를 즐길 수 있다며
바비큐는 먹는 즐거움보다 준비하고
만드는 즐거움이 더 큰 문화이자
음식이라고 강조했다.
삶을 즐길 줄 아는
호모날라리언스가 필요한 시대
차 회장은 앞으로 할 일이
매우 많다고 고백했다.
지금까지가 명분과 정당성을
만들어온 과정이라면 이제부터는
현실적 자립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협회의 구조도 재정비하고
시스템도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등
스포츠바비큐의 문화적 견고함과
안정적 산업화를 추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지난해 설립한
‘국제아웃도어바비큐스포츠연맹’ 사업을
현실화하는 것도 그가 해야 할 일이다.
아시아권 위주의 바비큐 경기대회를 통해
서서히 명실상부한 국제기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준비해나갈 계획이다.
“스포츠바비큐를 하는 프로바비큐어는
중장년층에게도 아주 좋은 직업입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무 때나 시작해도
조금만 열심히 자주 하면 원하는 위치와
수준을 달성할 수 있고 경기 참여 자격을
갖게 됩니다.
또한 스포츠바비큐는 순위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경기는 축제가 되고
상금은 명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수한 선수는 새로운 영역의
셀럽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스포츠바비큐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그리고 항상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입니다.”
끝으로 차 회장은 새로운 인류로의
진화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새로운 인류가 바로
‘호모날라리언스(Homo-nallarians)’란다.
그가 창조한 용어인 호모날라리언스는
5차 산업혁명시대의 인류라는 설명이다.
“그동안 인간은 노동을 위해
사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생산성이 높아지고
고도의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에게는 시간이 풍부해졌습니다.
먹고 노는 가운데 새로운 문화가 생기고
산업이 생기며 그것이 직업이 되는 세상,
그것이 5차 산업혁명의 실체입니다.
그래서 호모날라리언스로 살아남기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이 즐겁고 행복하게
노는 방법을 연구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차영기 회장은 행복도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며 축배를 들자는 제안으로
인터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