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울리는 오래된 경고다. 인류 문명은 반복되는 실험이다. 그 실험의 가장 비극적인 버전은 언제나 동일한 구조를 취한다. 한 인간의 확신이 수백만의 현실을 덮어쓰는 순간, 역사는 또 한 번 그 낡은 패턴을 작동시킨다. 독재(獨裁), 즉 홀로 재단(裁斷)한다는 이 두 글자는 단순히 권력의 집중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식론적 오만, 다시 말해 '내가 옳고 나머지는 틀렸다'는 철학적 자폐의 정치적 구현이다.
플라톤(Platon)은 『국가(Politeia)』에서 철학자-왕(philosopher-king)을 이상적 통치자로 제시했다. 그러나 그가 놓친 것이 있었다. 철학자가 왕이 되는 순간, 그는 철학자이기를 멈춘다는 사실이다. 권력은 성찰을 잠식하고, 확신은 의심의 여지를 소각한다. 역사가 증명하는 것은 플라톤의 이상이 아니라, 그 이상이 어떻게 폭정의 문법으로 전락하는가 하는 냉혹한 현실이다.
개인의 철학이 국가의 폭력이 되는 메커니즘은 확신의 독성에서 온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에서 권위주의적 성격(authoritarian character)을 해부했다. 그에 따르면, 권위주의적 인간은 두 가지 충동을 동시에 내면화한다. 강자에게 복종하고, 약자를 지배하려는 충동. 이것이 국가 권력과 결합할 때 발생하는 것이 바로 파시즘(Fascism)의 원형이다.
중요한 것은, 파시즘이 반드시 제복과 군화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때로 민주주의의 언어를 빌린다. '국가를 위해', '질서를 위해', '나만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수사(修辭) 속에 파시즘의 씨앗은 조용히 발아한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말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은 거창한 악마가 아니라, 사유를 멈춘 평범한 인간이 얼마나 체계적인 파괴를 수행할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의 문제는 오늘도 진동한다. 전통적 수구주의(守舊主義, conservatism in its regressive form)의 인식론적 전제는 명확하다. 국민은 어리석고, 지도자는 현명하다. 따라서 지도자가 국민을 이끌어야 한다. 이 인식은 계몽군주제(enlightened absolutism)의 철학적 토대이기도 하다.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der Große)이 "모든 것은 인민을 위해, 그러나 인민에 의해서는 안 된다(Alles für das Volk, aber nichts durch das Volk)"고 말했을 때, 그는 선의의 독재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선의(善意)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다. 오늘의 선의가 내일의 강압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지도자가 국민의 판단 능력을 신뢰하지 않을 때, 그 정치 체제는 필연적으로 가부장제(paternalism)의 함정에 빠진다. 가부장은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자녀의 자율성을 박탈하는 존재다.
역사의 반복된다. 확신이 폭정이 된 사례들 중 나폴레옹을 상기하면 혁명의 아들이 혁명을 삼키는 결과를 알 수 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는 프랑스 혁명의 산물이었다. 자유(Liberté), 평등(Égalité), 박애(Fraternité)를 기치로 한 혁명의 에너지가 그를 만들었지만, 권력의 정점에 선 나폴레옹은 혁명의 원리를 자신의 도구로 전락시켰다. 그는 유럽 전역에 '자유의 이념'을 수출한다는 명분으로 수백만의 생명을 전장에 던졌다. 해방의 언어로 포장된 정복의 실체였다.
톨스토이(Lev Tolstoy)는 『전쟁과 평화(Voyna i mir)』에서 나폴레옹을 역사의 거품으로 묘사한다. 개인의 의지가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거대한 물결이 개인이라는 부표(浮標)를 밀어낼 뿐이라는 역사 철학이다. 그러나 그 부표가 권력을 쥐었을 때, 그 파장은 수천만 인간의 삶을 바꿔놓는다. 나폴레옹 전쟁의 사망자 수는 350만에서 600만으로 추산된다. 한 인간의 '위대한 확신'이 만들어낸 숫자다.
히틀러는 개인의 원한이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된 경우다.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의 『나의 투쟁(Mein Kampf)』은 정치 철학서가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원한(ressentiment)과 편집증적 세계관의 기록이다.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ressentiment 개념을 빌리자면, 히틀러는 자신의 실패와 열등감을 유대인, 공산주의자, 민주주의자라는 외부의 적에게 투사함으로써 자신의 심리적 균형을 유지했다. 문제는 그 개인의 병리가 바이마르 공화국(Weimar Republic)의 경제적 붕괴, 민족적 굴욕감,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라는 비옥한 토양을 만나 국가 이데올로기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6백만 유대인의 학살, 5천만 명이 넘는 2차 세계대전 사망자. 이것이 한 인간의 망상(妄想)이 국가 권력과 결합했을 때의 최종 청구서다.
마오쩌둥의 경우 이상이 기근으로 귀결되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 Great Leap Forward, 1958~1962)은 산업화를 15년 만에 달성하겠다는 한 지도자의 의지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단적인 사례 중 하나다. 농업 생산량을 과대보고하도록 강요받은 지방 관료들, 실제로는 기근에 허덕이면서도 수출을 계속해야 했던 농촌.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1500만에서 5500만으로 추산되는 아사자(餓死者)가 발생했다. 이것은 전쟁도, 자연재해도 아니었다. 한 인간의 이상(理想)이 현실과 충돌하면서 발생한 인재(人災)였다.
마오는 참새가 곡식을 먹는다는 이유로 전 국민에게 참새 박멸을 명령했다. 참새가 사라지자 해충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농작물은 초토화됐다. 이것이 개인의 생각이 국가 정책이 됐을 때의 생태학적 비극이다. 생태계는 지도자의 확신을 비웃는다.
현재진행형의 비극도 있다. 한 비루한 인간의 세계관이 국가 운영 철학이 되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애석하게도 우리나라 검사 출신 대통령 이야기다. 이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검사라는 직업이 형성하는 세계관의 구조적 특성이다.
검사의 직업적 훈련은 세계를 '피의자와 무고한 자'로 양분하는 것이다. 회색지대는 수사 기법의 문제이지, 존재론적 카테고리가 아니다. 이 이분법적 세계관이 국가 통치에 그대로 이식될 때, 정치적 반대자는 수사의 대상이 되고, 언론은 체제의 적이 되며, 민주주의적 절차는 장애물로 인식된다.
2024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非常戒嚴) 선포는 단순한 정치적 오판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세계관이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헌법적 절차도, 국민의 정서도, 정치적 현실도 그 확신의 필터를 통과하지 못했다. '나만이 옳다'는 인식론적 고립이 낳은 헌정 위기였다.
더 깊은 문제는 이것이다. 그를 지지했던 수백만의 국민들은 무엇을 지지한 것인가. 일부는 그의 정책을 지지했고, 일부는 그가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가치를 지지했으며, 일부는 전임 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그를 선택했다. 그 어느 경우에도 그들은 12월 3일 밤의 그 결정을 위임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대의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의 구조적 취약성이다. 국민이 선출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라 인간이고, 그 인간의 내면에는 선거 공보에 기재되지 않은 세계관이 존재한다.
자본가의 논리로 민주주의를 재편하려는 시도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지금 미국에서는 미국식 민주주의가 생산해낸 가장 이례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는 민주주의의 형식을 활용하여 민주주의의 본질을 잠식하는, 이른바 '민주주의적 민주주의 해체(democratic dismantling of democracy)'를 수행하고 있는 듯 하다.
비즈니스로 성공한 사업가가 모든 것은 협상이 가능하고, 가격이 있으며, 윈윈이라고 교묘하게 포장된 승자와 패자로 나뉜다. 동맹은 거래(deal)이고, 민주주의는 경쟁이며, 적은 협상 상대가 되기 전까지는 섬멸의 대상이다. 이 세계관이 세계 최강국의 외교 정책, 경제 정책, 사법 체계에 이식될 때 발생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이다.
관세(tariff)는 경제적 수단이기 이전에 세계관의 표현이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정책이기 이전에 인식론이다. 그 인식론에서 다자주의(multilateralism), 기후협약(climate accord), 국제 기구(international institutions)는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음모론적 구조물로 인식된다. 한 인간의 세계관이 전 지구적 체계를 재편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런 현상이 보여주는 포퓰리즘(populism)의 역설이다. 그는 '국민의 편'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실제로는 국민의 판단 능력을 무시한다. 팩트체크를 '가짜 뉴스(fake news)'로 규정하는 것은 국민이 검증할 능력이 없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이것은 수구주의의 가장 세련되지만 시대착오적 버전이다. 국민을 어리석은 존재로 보되, 그 어리석음을 자신의 권력 자원으로 활용한다.
왜 '평범한 국민'은 저항하지 못하는지 복종의 심리학 차원에서 바라본다.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의 복종 실험(obedience experiment, 1961)은 충격적인 사실을 드러냈다. 평범한 인간의 65%가 권위 있는 명령 앞에서 타인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전기 충격을 가하는 행동을 이행했다. 이것은 인간의 선악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권위(authority)와 구조(structure) 앞에서 개인의 도덕적 주체성이 얼마나 쉽게 위임되는가의 문제다.
파시즘은 총구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일상의 순응(conformity), 무관심의 공모(complicity of indifference), 그리고 '나 하나가 뭘 해도...'라는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의 위에 구축된다. 마르틴 니묄러(Martin Niemöller) 목사의 저 유명한 고백이 이것을 정확히 포착한다.
"처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유대인을 잡으러 왔다... 마침내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경제적 종속과 정치적 무기력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항하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생존의 문제다. 내일의 생계, 자녀의 교육, 노후의 안정. 이 구체적 현실 앞에서 거시적 정치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칼 마르크스(Karl Marx)가 종교를 '인민의 아편(opium of the people)'이라고 불렀을 때, 그 통찰은 오늘날 소비문화, 엔터테인먼트, 소셜미디어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스펙터클(spectacle)이 충분히 자극적일 때, 정치적 각성은 유보된다.
기 드보르(Guy Debord)의 『스펙터클의 사회(La Société du spectacle, 1967)』는 이미 반세기 전에 이것을 예견했다. 현대 사회에서 삶은 스펙터클들의 거대한 축적으로 대체된다. 직접적으로 살아지는 모든 것은 표상(representation)으로 물러난다. 정치적 폭력은 엔터테인먼트의 형식으로 소비되고, 저항의 에너지는 분노의 클릭으로 소진된다.
민주주의의 자기수정 메커니즘과 그 한계에서 법치(法治)라는 최후의 방어선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반복되는 실패로부터 완전히 무력하지는 않았다. 몽테스키외(Montesquieu)의 삼권분립(separation of powers), 존 로크(John Locke)의 사회계약론(social contract theory),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일반의지(volonté générale) 개념은 모두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어떻게 하면 권력이 한 인간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을 것인가.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6시간 만에 좌절된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위대한 사례였다. 국회의원들이 새벽에 담을 넘어 국회에 진입했고, 의결 정족수를 채워 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제도가 작동했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제도만의 힘이 아니었다.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 계엄군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군인들,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일부 행정명령은 사법부에 의해 제동이 걸리고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자기수정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그 메커니즘은 지속적인 시민의 참여와 감시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체계가 아니라 끊임없는 실천이다.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발언으로 자주 인용되는 문장이 있다.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부 형태다. 지금껏 시도된 다른 모든 형태를 제외하면(Democracy is the worst form of government, except for all those other forms that have been tried)." 이 역설적 옹호 속에 민주주의의 본질이 담겨 있다. 민주주의는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오류를 교정할 수 있는 유일한 시스템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지도자를 교체할 수 있는 절차를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교체 사이의 시간이다. 5년, 혹은 4년. 그 시간 동안 한 인간의 망상이 국가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지 모른다.
새로운 인간의 출현과 정치적 계몽의 가능성을 호모날라리언스(HomoNallarians)와 정치 참여의 재정의에 대해 생각해 본다. AI와 로봇의 시대,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이 놀이적 존재로 진화하는 5차 산업혁명의 맥락에서, 정치 참여의 형식도 변화할 것이다. 노동에 종속된 시간에서 해방된 시민은 더 많은 시간을 공동체의 문제에 투여할 수 있다. 호모 날라리언스적 존재, 놀이하는 인간이 동시에 정치하는 인간이 되는 가능성이다.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가 『호모 루덴스(Homo Ludens, 1938)』에서 주장했듯, 놀이는 문화의 장식이 아니라 문화의 토대다. 인류의 원초적 의식(儀式)에서 바비큐가 공동체의 결속과 생존의 지혜를 전달했듯, 놀이적 실천은 공동체의 가치를 재생산하는 행위다. 생산적 노동이 아닌 의식적 놀이 속에서 공동체의 규범이 형성되고, 지도자의 자격이 검증되었던 원시의 기억. 그 기억으로의 귀환이 단순한 낭만주의가 아닌 까닭은, 그것이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의 원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수 엘리트의 확신이 다수의 삶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의식을 통해 합의를 형성하는 방식. 이것이 인류가 잊어버린, 그러나 복원해야 할 정치의 원형이다.
에필로그 : 지도자의 자격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필요하다.
결국 이 모든 논의는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지도자는 무엇을 근거로 다스리는가.
플라톤의 지혜(知慧)인가,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의 권력인가, 루소의 일반의지인가. 역사가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지혜를 자처하는 자들의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가이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강할수록, 그 지도자는 타인의 현실을 무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공자(孔子)는 "알면 안다고 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앎이다(知之爲知之,不知爲不知,是知也)"라고 했다. 이 단순한 인식론적 겸손이 정치에서 실천될 때, 지도자는 국민을 어리석은 존재로 보지 않게 된다. 국민의 삶이 지도자보다 현실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대의(代議)가 가능해진다.
인류의 오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나폴레옹 이후에도, 히틀러 이후에도, 마오 이후에도 같은 구조의 지도자들은 등장했고, 앞으로도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매번 그 망상에 맞서 광장으로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담을 넘은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명령을 거부한 군인들이 있었다. 그 저항의 총합이 민주주의라는 불완전한 실험을 지속시키는 힘이다.
국민을 어리석다고 보는 지도자는 결국 자신의 어리석음을 증명하게 된다. 역사의 심판은 항상 그 방향으로 작동해 왔다.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Saint Helena)에서, 히틀러는 지하 벙커에서, 마오의 유산은 천안문(天安門)의 핏빛 속에서 재심(再審)을 받았다.
지도자의 망상이 국민의 운명이 되지 않으려면, 국민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주권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피로감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유일한 원칙이다. 불(火)을 처음 다루었던 인류의 조상이 불을 독점하지 않고 공동체 전체의 것으로 나누었을 때 비로소 문명이 시작되었듯, 권력 역시 독점되는 순간 그것은 문명을 파괴하는 불로 돌변한다.
개인의 생각은 일기에 기록되어야 한다. 국가 정책은 공동체의 합의로 써야 한다. 이 단순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때마다, 역사는 가장 비싼 수업료를 청구했다.
[논설] 지도자의 망상이 국민의 운명이 되는 역설을 통해 파쇼적 개인이 공동체를 어떻게 잠식하고 망쳐 가는가?
광장에서 울리는 오래된 경고다. 인류 문명은 반복되는 실험이다. 그 실험의 가장 비극적인 버전은 언제나 동일한 구조를 취한다. 한 인간의 확신이 수백만의 현실을 덮어쓰는 순간, 역사는 또 한 번 그 낡은 패턴을 작동시킨다. 독재(獨裁), 즉 홀로 재단(裁斷)한다는 이 두 글자는 단순히 권력의 집중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식론적 오만, 다시 말해 '내가 옳고 나머지는 틀렸다'는 철학적 자폐의 정치적 구현이다.
플라톤(Platon)은 『국가(Politeia)』에서 철학자-왕(philosopher-king)을 이상적 통치자로 제시했다. 그러나 그가 놓친 것이 있었다. 철학자가 왕이 되는 순간, 그는 철학자이기를 멈춘다는 사실이다. 권력은 성찰을 잠식하고, 확신은 의심의 여지를 소각한다. 역사가 증명하는 것은 플라톤의 이상이 아니라, 그 이상이 어떻게 폭정의 문법으로 전락하는가 하는 냉혹한 현실이다.
개인의 철학이 국가의 폭력이 되는 메커니즘은 확신의 독성에서 온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에서 권위주의적 성격(authoritarian character)을 해부했다. 그에 따르면, 권위주의적 인간은 두 가지 충동을 동시에 내면화한다. 강자에게 복종하고, 약자를 지배하려는 충동. 이것이 국가 권력과 결합할 때 발생하는 것이 바로 파시즘(Fascism)의 원형이다.
중요한 것은, 파시즘이 반드시 제복과 군화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때로 민주주의의 언어를 빌린다. '국가를 위해', '질서를 위해', '나만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수사(修辭) 속에 파시즘의 씨앗은 조용히 발아한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말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은 거창한 악마가 아니라, 사유를 멈춘 평범한 인간이 얼마나 체계적인 파괴를 수행할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의 문제는 오늘도 진동한다. 전통적 수구주의(守舊主義, conservatism in its regressive form)의 인식론적 전제는 명확하다. 국민은 어리석고, 지도자는 현명하다. 따라서 지도자가 국민을 이끌어야 한다. 이 인식은 계몽군주제(enlightened absolutism)의 철학적 토대이기도 하다.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der Große)이 "모든 것은 인민을 위해, 그러나 인민에 의해서는 안 된다(Alles für das Volk, aber nichts durch das Volk)"고 말했을 때, 그는 선의의 독재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선의(善意)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다. 오늘의 선의가 내일의 강압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지도자가 국민의 판단 능력을 신뢰하지 않을 때, 그 정치 체제는 필연적으로 가부장제(paternalism)의 함정에 빠진다. 가부장은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자녀의 자율성을 박탈하는 존재다.
역사의 반복된다. 확신이 폭정이 된 사례들 중 나폴레옹을 상기하면 혁명의 아들이 혁명을 삼키는 결과를 알 수 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는 프랑스 혁명의 산물이었다. 자유(Liberté), 평등(Égalité), 박애(Fraternité)를 기치로 한 혁명의 에너지가 그를 만들었지만, 권력의 정점에 선 나폴레옹은 혁명의 원리를 자신의 도구로 전락시켰다. 그는 유럽 전역에 '자유의 이념'을 수출한다는 명분으로 수백만의 생명을 전장에 던졌다. 해방의 언어로 포장된 정복의 실체였다.
톨스토이(Lev Tolstoy)는 『전쟁과 평화(Voyna i mir)』에서 나폴레옹을 역사의 거품으로 묘사한다. 개인의 의지가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거대한 물결이 개인이라는 부표(浮標)를 밀어낼 뿐이라는 역사 철학이다. 그러나 그 부표가 권력을 쥐었을 때, 그 파장은 수천만 인간의 삶을 바꿔놓는다. 나폴레옹 전쟁의 사망자 수는 350만에서 600만으로 추산된다. 한 인간의 '위대한 확신'이 만들어낸 숫자다.
히틀러는 개인의 원한이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된 경우다.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의 『나의 투쟁(Mein Kampf)』은 정치 철학서가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원한(ressentiment)과 편집증적 세계관의 기록이다.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ressentiment 개념을 빌리자면, 히틀러는 자신의 실패와 열등감을 유대인, 공산주의자, 민주주의자라는 외부의 적에게 투사함으로써 자신의 심리적 균형을 유지했다. 문제는 그 개인의 병리가 바이마르 공화국(Weimar Republic)의 경제적 붕괴, 민족적 굴욕감,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라는 비옥한 토양을 만나 국가 이데올로기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6백만 유대인의 학살, 5천만 명이 넘는 2차 세계대전 사망자. 이것이 한 인간의 망상(妄想)이 국가 권력과 결합했을 때의 최종 청구서다.
마오쩌둥의 경우 이상이 기근으로 귀결되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 Great Leap Forward, 1958~1962)은 산업화를 15년 만에 달성하겠다는 한 지도자의 의지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단적인 사례 중 하나다. 농업 생산량을 과대보고하도록 강요받은 지방 관료들, 실제로는 기근에 허덕이면서도 수출을 계속해야 했던 농촌.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1500만에서 5500만으로 추산되는 아사자(餓死者)가 발생했다. 이것은 전쟁도, 자연재해도 아니었다. 한 인간의 이상(理想)이 현실과 충돌하면서 발생한 인재(人災)였다.
마오는 참새가 곡식을 먹는다는 이유로 전 국민에게 참새 박멸을 명령했다. 참새가 사라지자 해충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농작물은 초토화됐다. 이것이 개인의 생각이 국가 정책이 됐을 때의 생태학적 비극이다. 생태계는 지도자의 확신을 비웃는다.
현재진행형의 비극도 있다. 한 비루한 인간의 세계관이 국가 운영 철학이 되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애석하게도 우리나라 검사 출신 대통령 이야기다. 이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검사라는 직업이 형성하는 세계관의 구조적 특성이다.
검사의 직업적 훈련은 세계를 '피의자와 무고한 자'로 양분하는 것이다. 회색지대는 수사 기법의 문제이지, 존재론적 카테고리가 아니다. 이 이분법적 세계관이 국가 통치에 그대로 이식될 때, 정치적 반대자는 수사의 대상이 되고, 언론은 체제의 적이 되며, 민주주의적 절차는 장애물로 인식된다.
2024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非常戒嚴) 선포는 단순한 정치적 오판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세계관이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헌법적 절차도, 국민의 정서도, 정치적 현실도 그 확신의 필터를 통과하지 못했다. '나만이 옳다'는 인식론적 고립이 낳은 헌정 위기였다.
더 깊은 문제는 이것이다. 그를 지지했던 수백만의 국민들은 무엇을 지지한 것인가. 일부는 그의 정책을 지지했고, 일부는 그가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가치를 지지했으며, 일부는 전임 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그를 선택했다. 그 어느 경우에도 그들은 12월 3일 밤의 그 결정을 위임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대의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의 구조적 취약성이다. 국민이 선출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라 인간이고, 그 인간의 내면에는 선거 공보에 기재되지 않은 세계관이 존재한다.
자본가의 논리로 민주주의를 재편하려는 시도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지금 미국에서는 미국식 민주주의가 생산해낸 가장 이례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는 민주주의의 형식을 활용하여 민주주의의 본질을 잠식하는, 이른바 '민주주의적 민주주의 해체(democratic dismantling of democracy)'를 수행하고 있는 듯 하다.
비즈니스로 성공한 사업가가 모든 것은 협상이 가능하고, 가격이 있으며, 윈윈이라고 교묘하게 포장된 승자와 패자로 나뉜다. 동맹은 거래(deal)이고, 민주주의는 경쟁이며, 적은 협상 상대가 되기 전까지는 섬멸의 대상이다. 이 세계관이 세계 최강국의 외교 정책, 경제 정책, 사법 체계에 이식될 때 발생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이다.
관세(tariff)는 경제적 수단이기 이전에 세계관의 표현이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정책이기 이전에 인식론이다. 그 인식론에서 다자주의(multilateralism), 기후협약(climate accord), 국제 기구(international institutions)는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음모론적 구조물로 인식된다. 한 인간의 세계관이 전 지구적 체계를 재편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런 현상이 보여주는 포퓰리즘(populism)의 역설이다. 그는 '국민의 편'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실제로는 국민의 판단 능력을 무시한다. 팩트체크를 '가짜 뉴스(fake news)'로 규정하는 것은 국민이 검증할 능력이 없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이것은 수구주의의 가장 세련되지만 시대착오적 버전이다. 국민을 어리석은 존재로 보되, 그 어리석음을 자신의 권력 자원으로 활용한다.
왜 '평범한 국민'은 저항하지 못하는지 복종의 심리학 차원에서 바라본다.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의 복종 실험(obedience experiment, 1961)은 충격적인 사실을 드러냈다. 평범한 인간의 65%가 권위 있는 명령 앞에서 타인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전기 충격을 가하는 행동을 이행했다. 이것은 인간의 선악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권위(authority)와 구조(structure) 앞에서 개인의 도덕적 주체성이 얼마나 쉽게 위임되는가의 문제다.
파시즘은 총구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일상의 순응(conformity), 무관심의 공모(complicity of indifference), 그리고 '나 하나가 뭘 해도...'라는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의 위에 구축된다. 마르틴 니묄러(Martin Niemöller) 목사의 저 유명한 고백이 이것을 정확히 포착한다.
"처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유대인을 잡으러 왔다... 마침내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경제적 종속과 정치적 무기력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항하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생존의 문제다. 내일의 생계, 자녀의 교육, 노후의 안정. 이 구체적 현실 앞에서 거시적 정치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칼 마르크스(Karl Marx)가 종교를 '인민의 아편(opium of the people)'이라고 불렀을 때, 그 통찰은 오늘날 소비문화, 엔터테인먼트, 소셜미디어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스펙터클(spectacle)이 충분히 자극적일 때, 정치적 각성은 유보된다.
기 드보르(Guy Debord)의 『스펙터클의 사회(La Société du spectacle, 1967)』는 이미 반세기 전에 이것을 예견했다. 현대 사회에서 삶은 스펙터클들의 거대한 축적으로 대체된다. 직접적으로 살아지는 모든 것은 표상(representation)으로 물러난다. 정치적 폭력은 엔터테인먼트의 형식으로 소비되고, 저항의 에너지는 분노의 클릭으로 소진된다.
민주주의의 자기수정 메커니즘과 그 한계에서 법치(法治)라는 최후의 방어선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반복되는 실패로부터 완전히 무력하지는 않았다. 몽테스키외(Montesquieu)의 삼권분립(separation of powers), 존 로크(John Locke)의 사회계약론(social contract theory),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일반의지(volonté générale) 개념은 모두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어떻게 하면 권력이 한 인간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을 것인가.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6시간 만에 좌절된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위대한 사례였다. 국회의원들이 새벽에 담을 넘어 국회에 진입했고, 의결 정족수를 채워 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제도가 작동했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제도만의 힘이 아니었다.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 계엄군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군인들,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일부 행정명령은 사법부에 의해 제동이 걸리고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자기수정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그 메커니즘은 지속적인 시민의 참여와 감시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체계가 아니라 끊임없는 실천이다.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발언으로 자주 인용되는 문장이 있다.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부 형태다. 지금껏 시도된 다른 모든 형태를 제외하면(Democracy is the worst form of government, except for all those other forms that have been tried)." 이 역설적 옹호 속에 민주주의의 본질이 담겨 있다. 민주주의는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오류를 교정할 수 있는 유일한 시스템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지도자를 교체할 수 있는 절차를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교체 사이의 시간이다. 5년, 혹은 4년. 그 시간 동안 한 인간의 망상이 국가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지 모른다.
새로운 인간의 출현과 정치적 계몽의 가능성을 호모날라리언스(HomoNallarians)와 정치 참여의 재정의에 대해 생각해 본다. AI와 로봇의 시대,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이 놀이적 존재로 진화하는 5차 산업혁명의 맥락에서, 정치 참여의 형식도 변화할 것이다. 노동에 종속된 시간에서 해방된 시민은 더 많은 시간을 공동체의 문제에 투여할 수 있다. 호모 날라리언스적 존재, 놀이하는 인간이 동시에 정치하는 인간이 되는 가능성이다.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가 『호모 루덴스(Homo Ludens, 1938)』에서 주장했듯, 놀이는 문화의 장식이 아니라 문화의 토대다. 인류의 원초적 의식(儀式)에서 바비큐가 공동체의 결속과 생존의 지혜를 전달했듯, 놀이적 실천은 공동체의 가치를 재생산하는 행위다. 생산적 노동이 아닌 의식적 놀이 속에서 공동체의 규범이 형성되고, 지도자의 자격이 검증되었던 원시의 기억. 그 기억으로의 귀환이 단순한 낭만주의가 아닌 까닭은, 그것이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의 원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수 엘리트의 확신이 다수의 삶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의식을 통해 합의를 형성하는 방식. 이것이 인류가 잊어버린, 그러나 복원해야 할 정치의 원형이다.
에필로그 : 지도자의 자격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필요하다.
결국 이 모든 논의는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지도자는 무엇을 근거로 다스리는가.
플라톤의 지혜(知慧)인가,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의 권력인가, 루소의 일반의지인가. 역사가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지혜를 자처하는 자들의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가이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강할수록, 그 지도자는 타인의 현실을 무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공자(孔子)는 "알면 안다고 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앎이다(知之爲知之,不知爲不知,是知也)"라고 했다. 이 단순한 인식론적 겸손이 정치에서 실천될 때, 지도자는 국민을 어리석은 존재로 보지 않게 된다. 국민의 삶이 지도자보다 현실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대의(代議)가 가능해진다.
인류의 오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나폴레옹 이후에도, 히틀러 이후에도, 마오 이후에도 같은 구조의 지도자들은 등장했고, 앞으로도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매번 그 망상에 맞서 광장으로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담을 넘은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명령을 거부한 군인들이 있었다. 그 저항의 총합이 민주주의라는 불완전한 실험을 지속시키는 힘이다.
국민을 어리석다고 보는 지도자는 결국 자신의 어리석음을 증명하게 된다. 역사의 심판은 항상 그 방향으로 작동해 왔다.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Saint Helena)에서, 히틀러는 지하 벙커에서, 마오의 유산은 천안문(天安門)의 핏빛 속에서 재심(再審)을 받았다.
지도자의 망상이 국민의 운명이 되지 않으려면, 국민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주권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피로감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유일한 원칙이다. 불(火)을 처음 다루었던 인류의 조상이 불을 독점하지 않고 공동체 전체의 것으로 나누었을 때 비로소 문명이 시작되었듯, 권력 역시 독점되는 순간 그것은 문명을 파괴하는 불로 돌변한다.
개인의 생각은 일기에 기록되어야 한다. 국가 정책은 공동체의 합의로 써야 한다. 이 단순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때마다, 역사는 가장 비싼 수업료를 청구했다.